카테고리 보관물: 우리가 사는 세상

통신 3사

한국에 통신 3사인 KT, SKT, LG U+가 털리고, 그중 이름부터 Korea Telecom인, 한국을 대표하는 통신사인 KT가 해킹을 당해 개인정보가 털린 수준이 아닌, 역사적인 피해, 실제로 물질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중이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가?

한국에선 실제 통신 망을 가지고 있는 통신사가 저 3개 뿐인데, 저 3개가 모두 제일 중요한 부분이 털리면, 우리는 할수 있는게 있을수가 없다.

손만 쭉쭉 빨고있는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렇게 하고도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아주 잘 돌아가고, 몇달 지나니 인터넷에 관련 글 하나도 안뜬다.

몇달 전만 하더라도 피해 보상해라 어쩌구 저쩌구, 말 많던 사람들 다 어디갔나? 약정 없앤다 한마디면 끝나는것인가?

우리 국민들은 통신 3사가 털렸기에 이주할 통신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통신사 내부에서도 처벌을 회피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우리 개인들은 어찌 할 바가 없다. 회사에서 보안을 철저하게 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게 진정 IT 강국인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이 맞는가?

우리의 보안의식이 이정도밖에 안 되는가?

해킹을 당해도 벌금 내고 끝이다. 그 벌금 조차도 수익에 비하면 많지 않다.

통신사는 민간 회사와 다르게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기업이다.

통신사에게는 일반 기업과 다른 특별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개인이 해결할수 없는 사안이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고도 아무 법 개정 소식이 없다.

조사만 계속해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 세계 어느곳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있었던 적이 없다.

이렇게 하고도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맞는가?

게임 이론

게임에는 다양한 개념들이 있다.

HP도 있고, 코인도 있고, 플레이어라는 개념과, NPC 나 등등.

또 그 개념이 없는 게임도 있다.

HP 가 없거나, 화폐가 없거나.
인벤토리라는 개념이 없는 하이드로니어 라는 게임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개념들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 하나 이런 개념을 정의하진 않았다.

음악도 느끼는 것이지만, 규칙이 없진 않다.

음악은 화성, 박자, 멜로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음악 이론이 있다.

게임은 왜 게임 이론이 없을까?

오래되지 않아서 연구하는 사람이 없는걸까?

게임개발 학과는 있지만, 게임 이론학자는 없다.

왜 그럴까?

사실 알고보면 대기업에선 이런걸 연구한다.

보통 이런 연구는 경영이라 불린다.

하지만 경영은 어떻게 해야 인기있고, 이 잘 벌리는지에 주목한다.

나는 여기서 게임의 구성 요소, 개념에 주목하고싶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식의 게임이 있고,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장르로 묶어 부른다.

정형화된 규칙은 없다. 자연스럽게 마치 유행어처럼, 장르가 정의된다.

대표적으로 메트로배니아 장르가 있다.
단어의 유례는 닌텐도의 메트로이드, 코나미의 케슬바니아(악마성)을 합쳐 메트로배니아 인것이다.

이해

최근 세상에는 많은 싸움이 벌어진다.

우리는 남을 이해하지 않는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어떠한 다툼이 벌어졌을때, 남의 말을 들어주었는가?

확증 편향.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존의 신념 혹은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과 태도.

당신은 절대로 저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저런적이 인생 살면서 전혀 없었는가?

아니, 그럴수 없다.

확증 편향은 본능이다.

옛말에 이런말이 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일부 이상한 것만 보고, 당신은 모든게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자신의 기억 딱 하나 때문에 남의 말을 틀렸다고 생각하고, 듣지 않고, 이해하지 않은적이 정말 없는가?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다. 철학자도 아니다. 글은 여기서 마무리 하겠다.

행복

행복이란 뭘까?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다.

불행하지 않다고 행복하지 않다.

엄청난 부자여서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게 불행한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것이라고 말할수도 있지만 이건 그저 비유기 때문에 생각은 자유롭게.

직장생활하며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영어공부하고 채식하고 샐러드 먹고 탄산음료 안먹고.

우리 입장에선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 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수 있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 사람에겐 그렇게 빡빡하게 사는것에 행복을 느끼기 때문일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바뀐것이다.

동물원

우리는 동물원 울타리 안을 보는거라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울타리 안을 밖으로 정의한다면, 우리가 밖을 내다보는 동물원의 동물이 되는거다.

그렇다.

동물원에서 우리가 동물을 보는것이 아니라, 동물이 우리를 구경하는것 이였던 것이다!

엄청난!

그리고 “동물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우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니잖아?” 라고 말할수 있다.
아니다. 우리는 지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우주를 갈수는 있지만 우주도 무한하지 않다.

우리는 우주라는 거대한 울타리에 같혀 사는것이다.

“동물들은 사육사가 하라는데로 해야하는걸? 안하면 혼을 낸다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법이라는 사육사가 하라는데로 하지 않으면 혼난다.

우주에 가면 달라질까? 물리 법칙이라는 사육사가 있기 때문에 아니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다. 더 이상 고민하지는 않는다. 각자 생각은 다르므로, 각자 자유롭게 이 글에 대한 생각을 하시길.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에선 돈 많이 벌고, 잘 사는 사람도 있고요.
돈이 없어서, 원룸에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이야기에선 두번째 경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왜 삶을 포기하려고 할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저는 대부분 지금이 힘들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일 하나 때문에 포기하려고 하는거죠. 예를 들어서 해야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 하나조차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같은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그런 일은 1년정도만 지나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됩니다.
주변에 쓰레기가 많은데, 치우지도 않고 인터넷만 하는 내가 싫다? 그 쓰레기가 1년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요?

제가 저번에 “20살에 무슨 일이 있든, 당신에겐 30살이 남았다.” 라고 했었던 적이 있었죠.
단지 지금 한번이 미래의 10년 20년을 포기할 이유가 될까요?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미래의 자신에게 약속을 하나 해보는건 어떨까요? “매일 사진 한장 찍기” 라던지, “10년후 나에게 글쓰기” 라던지.

아니면 지금 당장 할수 있는 쉬운 일을 찾아보는게 어떨까요?
뭐 예를 들어 “유튜브 영상 하나 보기” 라던지, “게임 하나 클리어하기” 라던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저는 유튜브에서 최근 유퀴즈를 즐겨 보는데요.
저의 유튜브 피드에 이런 영상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상에서 나온 청년에게 쓴 편지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피고인들의 삶과 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전에 형의 선고로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각자 써 내려가햐 합니다.
설령 앞으로 채워갈 여러분의 이야기가 애달프다 해도, 이야기는 절대로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못 다한 이야기가 너무나 궁굼합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앞으로 누릴 날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 이야기 책이

“나는 너무 힘들었다.”

로 끝난다면, 그건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죠.

아무리 배드엔딩이여도 보통 책들이 저렇게 끝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 이야기 책도, 마무리를 지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신다면 이것도 읽어보세요. 안되신다면 다음 문단까지만 읽어주세요.

자살을 막으려는 수많은 대책과 구호가 난무한다. 그러나 생을 포기하려 한 이의 깊은 고통을 우리는 제대로 공감조차 하기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밖에서 보기에 별 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이유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듯, 보잘 것 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아있게 만든다. 삶과 죽음은 불가해한 것이다. 어스름한 미명과 노을이 아름다워서, 누군가 내민 손이 고마워서,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미안해서, 이 험한 세상에서 지금껏 버텨온 자신이 불쌍하고 대견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하찮아 보일지라도 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은, 그저 그에게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그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 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 울산지방법원 2019고합241 판결문 중

Resilience

삶이 힘든 와중에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제가 미션 하나 드리겠습니다.
위의 Resilience 라는 단어의 뜻을 검색해보세요.
그리고 단어의 뜻을 댓글에 적어주세요.

글을 적는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읽고 힘이 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